울프강에서 만난 사람
에스.티. 듀퐁 최고경영자 알랑 크레베

[사진=강태훈]
[사진=강태훈]

 

에스.티. 듀퐁은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남성 명품 브랜드다. 150년이라는 오랜 세월 초심을 잃지 않고 변화하는 세상에 혁신의 바람을 유지해 온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을 찾은 알랭 크레베 에스.티. 듀퐁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장선화 선임기자 report@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남성 명품브랜드 에스.티. 듀퐁의 설립자 시몽 티소 듀퐁은 산업혁명 이후 바뀌는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욕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등장한 증기 기관차와 증기선은 이동의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시몽 티소 듀퐁은 럭셔리 여행 가방의 수요를 확인하고 사회 명사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준비에 들어갔다. 장인 정신을 발휘해 고급스러운 여행 가방을 만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나폴레옹 3세를 비롯해 유제니 황후 등 왕족, 그리고 신흥부자로 떠올라 시대의 변혁을 이끌었던 부르주아계층에 이르기까지 고급 여행 가방을 찾는 수요는 늘어났다. 명성은 덤이었다. 
에스.티. 듀퐁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일등공신이 된 상품은 라이터. 1941년 인도 펀자브 지역에 위치한 파티알라의 통치자가 그의 아내 100명을 위해 가방을 주문하면서 가방 안에 넣어줄 라이터를 주문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에스.티. 듀퐁은 세계 최초로 럭셔리 라이터를 디자인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 나갔다. 20세기 스타일의 아이콘이 된 에스.티. 듀퐁 라이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1973년 에스.티. 듀퐁에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필기구를 디자인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제 듀퐁 펜은 명사들이 찾는 필기구의 브랜드가 되었다.  
에스.티. 듀퐁은 남성 브랜드로 사업을 다각화 해 쉽게 변하지 않는 남성의 충성도에 만족도를 높이며 품격을 이어나가고 있다.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해서 늘 비단길만 걸을 수는 없는 법. 150년간 성공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오기도 했을 것이다. 


Q 이번 방한의 의미가 궁금하다.


에스.티. 듀퐁의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창립자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당시 브랜드 고유의 장인정신과 혁신적인 기술력을 다시 한번 더 알리고자 한국을 찾았다. 한국은 에스.티. 듀퐁의 주요 고객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한국, 일본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동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출장이라는 업무적인 차원의 방문이 아니라, 즐거움을 선사하는 여행과 같은 시간이다. 다만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찾지 못했다. 

Q 처음 브랜드가 생긴 1872년은 프랑스 혁명(1789~1799)이 끝난 뒤 사회적인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귀족문화가 부르주아 계층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던 때인데, 창립자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다.


그렇다. 1872년은 프랑스가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하고 제 2제국이 무너지면서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등장했던 시기다. 창업자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눈과 이를 현실화시켜 성공으로 이끄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창업자의 삼촌이 파리에서 유명한 사진사였는데, 나폴레옹 3세를 위시해 황후 등 귀족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알프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사보이 지방의 파베지(Farveges)라는 시골 마을에서 화려한 파리로 온 창업자는 삼촌의 일을 도왔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삼촌의 사진관에 화재가 나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그때 창업자 시몽 티소 듀퐁은 포기하지 않고 그동안 삼촌이 쌓아둔 인맥을 활용해 사업을 도모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철도의 시대가 열리자 여행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행가방을 만들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고향에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과 팀을 짜서 제품을 만들고, 그는 파리 메종에 가게를 열었다. 듀퐁 가방의 특징은 일상용품을 담을 수 있는 케이스가 오밀조밀 나눠져 있다. 덩그러니 빈 가방이 아니라 화장품, 사무용품 등을 구분해서 정리해 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폴레옹 3세는 폐위되었지만 귀족들은 여전히 부를 누리고 있어 그들이 주요 고객이 되었다. 

 

Q 에스.티. 듀퐁 150년 역사 중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1929년 미국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창업 후 순조롭게 성장을 하다가 1930년대 경제 공황 시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에스.티. 듀퐁은 미국에 투자를 많이 했다. 미국인들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소비를 늘려갔지만, 경기가 한순간 침체되면서 매출이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때 저렴한 제품을 개발해서 저가 시장을 공략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품질을 유지하며 소수의 고객에게 집중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두번째 위기는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이 전쟁터로 변했던 2차 세계대전이었다. 가죽 수급이 어렵게 되자 가방을 만들기 어렵게 되었다. 마침 인도에서 라이터 주문이 들어왔다. 인도 펀자브 지역의 통치자가 프랑스를 방문해 아내들에게 선물할 가방과 라이터 100개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처음 라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에스.티. 듀퐁의 라이터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70여개의 부품과 600개 이상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300개 항목 이상의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를 거쳐 탄생하는 100% 수공예 제품이다.

 

Q 위기가 기회로 된 사례를 소개한다면?
20세기 초만 해도 라이터는 대중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창업자가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특별한 가방을 만들어 냈던 장인정신을 발휘해 고품격 라이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후 라이터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수십만명이 귀국 후 전쟁터에 보급품으로 나왔던 담배를 피우던 습관을 기억하며 듀퐁 라이터가 소문이 났던 것이다. 1950~60년대 미국의 경제가 커지면서 에스.티. 듀퐁 브랜드는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Q 한때 풍미를 누렸던 제품이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있을 듯 하다. 
창업 당시 인기를 누렸던 럭셔리 여행 가방은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과거처럼 하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행하던 시대도 지났고, 교통수단이 비행기로 바뀌면서 짐이 가벼워야만 하니 무거운 여행가방은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창업 초기 만들었던 가방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만들었던 가방을 모티브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제품을 다시 개발해 내고 있다. 시가를 담을 수 있는 고품격 보관함(humidor)이라든가 가구와 접목해 주문제작하는 등 과거 가방 제작 기술을 응용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세월은 변했지만, 초기의 열정과 혁신적인 마인드는 늘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Q 제품 개발 과정에서 실수가 전화위복이 된 사례가 있다면 알려달라.
1930년대 일이다. 순금 도금 전문 기술자를 찾기 위해 신문광고를 냈는데 실수로 도금대장인(프랑스어 Plaqueur) 대신 천연 옻칠 대장인(laqueur)이라는 탈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실수가 결과적으로 뜻밖의 행운을 가져왔다. 금속에 천연 옻을 덧칠하는 기술을 얻게 되었고, 브랜드 특유의 전매 특허 기술로 발전시켰다. 

Q 중국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시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부상했다. 한국에서 어떤 브랜드가 성공하느냐가 중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 시장 공략에 큰 포인트가 된다. 한국이 아시아 시장의 등대와도 같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제품 판매에만 집중했던 것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해 이를 다른 나라에도 유지하고자 한다. 한국 시장이 다른 아시아 국가 진출의 모범사례가 된다.

Q 에스.티. 듀퐁이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궁금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제품(Be exceptional for exceptional people)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명품은 부자 혹은 명사 등이 주요 소비자였다면, 특별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 우리가 특별한 기대치, 그리고 가치를 전달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터만 봐도 그렇다. 쇳덩어리를 가공해서 패션 브랜드로 만든 기업은 찾기 어렵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듀퐁 라이터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 선물은 나에게 아버지가 건네는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최근에는 비흡연자들도 라이터를 구매한다. 브랜드 가치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

Q 16년째 에스.티. 듀퐁의 CEO를 맡고 있는데 장수의 비결이 궁금하다.
가장 큰 비결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에스.티. 듀퐁에는 여러가지 제품이 있는데, 끊임없이 더 좋게, 더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CEO의 역할이다.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하는데, 창의성의 근원이 바로 호기심이다. 좋아해서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일의 원천이 바로 호기심이다. 그래야만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할 때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다. 평소의 호기심이 투자와 결합하면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에게는 음악이 때로는 그런 역할을 한다. 어린시절 밴드 활동을 하면서 기타를 연주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또 여행을 다닐 때에도 새로운 것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사업과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2017년과 2018년 한국에서 유니세프와 자선 바자회를 열고 공연을 함께 하기도 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늘 좋아하는 일,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Q 독서를 좋아한다면 아끼는 작가를 소개해달라.
젊을 때에는 작곡을 위해서 시를 많이 읽고 영감을 받았다. 특히 샤를 보들레르, 아르튀르 랭보 등 탐미적이고 파괴적인 그런 내용을 담은 시를 좋아했다. 최근에는 스티브잡스 자서전과 같이 읽기 편한 책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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