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인공지능 1세대 이호수 박사

[사진 강태훈]
[사진 강태훈]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 전성 시대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배달을 하고 목소리로 검색하고 외국어 번역도 클릭 한번으로 해결한다. SF영화에 등장하던 AI가 현실이 된 계기는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적 이벤트. 이세돌의 석패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뺏어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공포와 고된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뒤섞이면서 세상에 파고들었다. AI란 무엇일까. AI가 과연 대한민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AI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1950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 겸 수학자인 앨런 튜링에 이른다.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튜링의 전망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 애플,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예고했다.

우리는 어떨까. AI는 인간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이는 그 무엇으로 각인되면서 풀리지 않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만능 도구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AI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폭발적이지만 실제 AI를 적용하는 기업은 전체 기업 중 2.5%에 그친다. 디지털 시대 기업의 AI 도입은 시대적 트렌드로 피할 수 없는 숙명일텐데 왜 그럴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한민국 인공지능 1세대 이호수 박사를 만났다. 그는 AI의 본질보다 피상적인 현상에 집중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이 박사는 IBM왓슨 연구소에서 20여년간 지식기반 시스템을 포함한 인공지능, 비즈니스 프로세스 모델링, 모바일 컴퓨터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기업의 이노베이션 컨설팅을 해 왔다. 2006년부터는 삼성전자와 SK그룹 등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Q 본질보다 피상적 현상에 몰입하는 현실을 우려하셨는데요. AI의 본질이 무엇인가?

- AI의 본질은 인간이 하는 일을 컴퓨터가 처리하게끔 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AI의 장점과 더불어 한계도 파악해서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AI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우리가 기대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자. 깨끗한 물이 귀한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추장이 유럽을 방문해 호텔에 투숙했다.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게 신기했던 추장은 수도꼭지를 아프리카로 가지고 가면 물 걱정을 덜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수도꼭지를 잘라 훔쳐 갔다. 수원지에서 수도관을 거쳐 수도꼭지까지 연결된 거대한 시스템(본질)을 모른 채 물을 쏟아내는 수도꼭지(현상)는 추장에게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아 보였을 법하다. 우리사회에서 AI는 아직 추장이 잘라간 수도꼭지 정도의 마법지팡이로 인식되고 있다.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에 과학자들이 모여 AI 연구를 시작했다. AI라는 용어도 이때 처음 썼다. 그들이 정의한 AI는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인간의 학습과 지능의 특징을 시뮬레이션해 인간의 인지 수준에 이르는 컴퓨터’다. 그런데 우리가 뇌에서 일어나는 학습 혹은 지능을 발현하는 과정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세운 AI 연구 목표에 이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Q AI의 표면적인 현상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보통 사람들은 AI를 언론매체 혹은 스타워즈, 터미네이터와 같은 SF영화에서 접하게 된다. 일단 흥미롭다. 언론매체라는 틀을 통해 보이는 AI는 토막 상식 수준의 지식이나 흥미롭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과장된 현상을 전달하기 쉽다. 예를 들어보자. 2015년 즈음 AI가 발전해 자율주행차가 수년 내 완성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요원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는 사실 하나로 AI가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알파고는 바둑만 잘 둘 뿐 다른 업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

 

[출처=2020 정보화통계집, 과학기술정보통신부]

Q 우리나라 기업 중 AI적용 비율이 2.5%에 그친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왜 이렇게 낮은건가?

- 정부의 2020년 정보화 통계조사에 따르면 종사자 수 10인 이상의 22만여 개 국내 기업체 중 AI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하는 비율은 2.5%에 그치고 있다. 반면 2020년 1월 미국 경제지 보도에 따르면 미국, EU, 중국의 기업 4500개 중 34%가 AI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와 기업이 AI를 집중적으로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AI 도입을 위한 기업의 투자는 방향성을 잡지못하고 있다. 효율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업의 경영자라면 AI 도입에 절박한 심정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AI를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에 대한 경영진의 고민을 자주 듣는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보지만 뜬구름 잡는 내용이 많아 되레 혼란스럽다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경영자들이 AI 도입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AI 도입에 투자하면 그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 조사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구개발 수준이 높지만, 상용화는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AI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2.5%라는 숫자는 AI 관련 연구성과를 상용화하고 사업화하는 과정과 연결통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AI 인력을 양성하기도 어렵다.

Q 국내 기업 중에서 AI 도입을 잘 하는 곳을 소개한다면?

-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이다. 패션디자인에 AI를 적용한 사례인데, 미학적이고 창의적인 패션 디자인 분야에 혁신적인 패션 디자인을 구현하는 일은 고난이도 작업이다. 패션 디자인의 작업 과정에서 의상의 콘셉트 잡기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아이디어가 시작되고 디자인의 기본 개념을 설정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영감을 얻기 위해 새롭고 창의적인 이미지가 아주 중요하다. 미술관∙박물관 등을 찾기도 하고, 웹사이트를 넘나들면서 시각적 경험을 하는데,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디자이너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새로운 채널을 활용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LG AI연구원의 엑사원이 답을 제시하고 있다. 수 억개의 텍스트와 이미지 짝으로 된 데이터로 엑사원을 훈련시킨 후 디자이너가 엑사원에게 명령한다. 이를테면 “금성에 피는 꽃을 보여줘.” 엑사원은 입력된 조건에 적합한 결과를 내 놓는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선보이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엑사원이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패턴을 추출해 옷을 만든다. AI와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패션 디자인에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Q 산학협력의 성과는 어떻게 이룰 수 있나?

- 학계와 산업계의 관점이 다르다. 학계에서는 성능 개선을 위한 새로운 모델과 시스템을 개발하고,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이슈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술을 실은 논문 발표가 주된 목표 중 하나다. 반면 산업계는 투자 대비 수익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래서 문제 정의가 우선이다. 목표는 문제를 파악한 후 설정하게 된다. 성능 지표의 목표값이 정해지면 최고(high end) 기술보다는 일관되고 안정적인 기술을 활용하게 된다.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적용한 후 얻는 가치와 달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투입 자원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빠르고 구체적인 결과를 선호는 이유다. 이같은 근본적인 차이로 학계에서 추구하는 최신 모델과 연구 논문이 산업계가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학계에서 도출되는 AI 연구 결과가 산업체로 이전돼 상용화하기 쉽지 않다. 학계의 AI 연구 활동이 산업체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학계와 산업계가 기획 시점에서부터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부분이 잘 안되고 있다.

Q 정부 혹은 기업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 AI는 기존 솔루션이 처리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최고 사양 하드웨어, 클라우드, 알고리즘 등 우수한 컴퓨팅 환경과 인력이 갖춰져 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성공적인 AI 프로젝트를 원한다면 처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관련자들이 합의한 목표를 설정한 후 정교한 중장기 기획과 투자 계획,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AI 인사이트와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가 빠진다면 야심차게 출발한 프로젝트는 목적을 벗어나 기존 서비스를 적당히 묶어 무늬만 AI인 서비스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AI는 하드웨어 제품과 다르다. 하드웨어는 개발이 끝나 판매에 들어가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만 소프트웨어는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보고 기획해야 한다. 하드웨어처럼 접근해서는 안된다.

 

[프로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컴퓨터공학 박사

-국방과학연구소

-IBM Watson연구소 이노베이션 컨설팅 서비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미디어솔루션센터 부사장

-SK C&C/ SK텔레콤 IT서비스 및 ICT분야 사업총괄 사장

-공학한림원 회원

※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 포춘코리아 장선화 선임기자 report@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저작권자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