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자는 CEO, 일도 잘한다.

잘 시간에 일해야 성공한다던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 충분히, 더 깊이 잘 수 있는 기업인이 ‘구루’로 통한다. 전주훈 삼분의일 대표를 통해 기업인들의 잠자리를 들여다봤다.

기업인들에게 잠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이들은 이제 잘 자야 더 나은 결정을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나아가서 수면 상태를 측정하고 질을 높일 장치를 사들이고 있다. 과거 잠을 줄여가며 현장을 찾던 산업화시대 창업자의 일과는 유물이 된 셈이다. 수면공학기업 ‘삼분의일’의 전주훈 대표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드 워크(Hard Work)’에서 ‘스마트 워크(Smart Work)’로 바뀌고 있다”며 “아직도 대표가 잠을 줄여가며 일한다면 사업에 문제가 있거나 보여주기 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매트리스를 개발하고 있다. 사람이 잠에 들려면 피부가 아닌 몸속 체온이 1℃가량 떨어져야 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에 착안했다. 이불을 덮고 몸을 덥혀야 잠을 잘 잔다는 상식과 다르다. 전 대표는 이런 콘셉트의 매트리스를 개발하는 데 앞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 한국지사장, 사모펀드 운용역 등 기업인 50여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잠은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남짓이었다. 미국 국립수면연구재단(NSF)에서 말하는 만 26세 이상 성인의 권장 수면시간(7~8시간)에 해당한다. 이들뿐만 아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하루 8시간 수면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18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행사(워싱턴 이코노믹 클럽)에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베조스는 “피곤하거나 우울하거나 한 이유로 결정의 질이 낮아진다면 그것(잠을 포기하고 얻은 시간)이 정말로 가치 있나? 아마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과 가장 가까운 산업에 있는 기업인도 예외는 아니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는 포춘코리아 인터뷰에서 “7~8시간 숙면을 취한다, 한 시간만 덜 자도 피곤함을 느끼는 편”이라고 밝혔다. 충분히 쉬어야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른 바 스마트 워크다.

질 좋은 잠이 더 나은 판단을 이끈다

인터뷰에 응한 기업인들은 수면의 질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더 깊은 잠, 더 개운한 아침을 위해 여러 보조기기를 활용하고 있었다. 한 유니콘기업의 한국 대표로 있는 A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A씨는 침실 온도와 습도, 바깥 날씨를 분석해 매트리스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매트리스(에이트슬립 팟프로), 수면 시 심장 박동부터 호흡 수, 체온 변화 등을 측정해주는 반지(오라 링), 그리고 공기를 코로 불어넣어주는 양압기, 이어플러그 등을 쓰고 있었다. A씨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게으르다”며 “측정하고 개선하고 넛지(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주는 환경)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A씨가 쓰는 기기들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기기를 만든 기업들이 수천억원대 자금을 조달하는 데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 매트리스를 만드는 미국의 에이트슬립(Eight Sleep)은 지난해 8월 종료한 시리즈C 라운드까지 총 1억5000만 달러(2004억원)를 투자 받았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시리즈C 라운드를 끝낸 핀란드의 오라(Oura)는 총 1억4830만 달러를 조달했다. 오라 측은 지난 4월 25억5000만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온도 조절 매트리스의 원조 격은 미국 칠리슬립(Chili Sleep)에서 2007년 낸 ‘칠리패드(Chilipad)’다. 실리콘밸리의 ‘구루’로 통하는 경영 컨설턴트 팀 패리스(Tim Ferriss)가 2015년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더 빨리, 더 좋은 잠을 자기 위해 내가 쓰는 도구’에서 소개하면서 기업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B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잠에서 깨면 귓구멍에 땀이 가득찰 만큼 몸에 열이 많았던 B씨는 페리스의 방송을 듣고 곧바로 제품을 샀다고 한다.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수면의 질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이 경험을 통해 내 퍼포먼스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수면과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측정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보조기기에 만족하고 있진 않다. “시중에 나온 기기는 모두 써본 것 같다”는 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 임원인 B씨의 경우가 그렇다. B씨는 측정된 데이터의 정확도가 높지 않다고 봤다. 데이터가 부정확한 만큼 자동 조절 기능도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B씨는 “수면시간과 심박수만 참고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응답자 역시 “온도를 관리한다는 콘셉트는 좋다”면서도 “기기마다 데이터가 너무 다르게 나오다 보니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드 워크의 시대엔 수면의 질은커녕 양도 충분치 못했다. 잠을 줄여 일할 시간을 늘리는 게 미덕이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한국이 그랬다. 이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세간에 알려진 정 전 회장의 수면시간은 4~5시간. 새벽 5시에 온 가족이 모여 아침 식사를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1세대 창업자였던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운전기사를 옆방에 재우다 한밤 중이라도 현장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의 창업자들은 최근까지도 하드 워크를 강조했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전 회장은 2019년 “우리는 하루에 편안하게 8시간을 일하려고 하는 이들은 필요 없다”고 말해 근로자들의 반발을 샀다. 당시 중국 정보통신(IT)업계에선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근무한다는 뜻의 ‘996 근무’가 논란이 됐다. 마 전 회장은 “어떤 이가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면 996에 그치겠는가”라고도 말했다. 당시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면 이혼하면 된다”며 거들었다.

수면도 경영하는 시대 올까

기업인과 잠의 관계는 갈수록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를 통해서다. 해외 스타트업의 성공 경험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수면공학 제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전 대표는 9월 스마트 매트리스를 선보인다. 국내 매트리스 시장 3위 코웨이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2에서 관련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사용자의 체형과 수면 자세 등에 따라 매트리스의 단단한 정도를 자동 조절해주는 식이다. 앞서 지난해 2월에는 매트리스 제조사 아이오베드를 46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스마트 워크에 올라탄 수면 시장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면유도 성분인 멜라토닌 약물을 만성 복용하고 있다는 한 인사관리(HR) 분야 스타트업의 대표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잠’이란 말에는 종착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끊임없이 실적을 개선해야 하는 기업인처럼 자신의 수면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족감보다 불안감이 더 클 수 있다. 팀 페리스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2020)에 소개된 한 음악 프로듀서의 말에는 수면 관리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불안감도 엿볼 수 있다.

“많은 타이탄(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칠리패드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세상에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길이 진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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