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플라나 CEO와 이진모 CPO가 지난 8월 17일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하고 있다. 이들 창업자는 하이브리드 동력이 UAM의 미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정민영]
김재형 플라나 CEO와 이진모 CPO가 지난 8월 17일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하고 있다. 이들 창업자는 하이브리드 동력이 UAM의 미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정민영]

한국에서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을 개발하겠단 스타트업이 나왔다. 글로벌 레이스는 선두가 어느정도 추려진 상황. 후발주자인 이들 창업자는 새로운 동력원에서 답을 찾고 있다.항공기에서 낭만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김재형 플라나(PLANA) 최고경영자(CEO)도 그런 부류다.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하겠다며 국비장학금을 받아 일본 나고야대로 유학 갔다. 같은 전공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현대차에 입사했지만, 꿈은 접지 않았다. 오늘날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로 불리는 개인용 비행체(PAV) 개발 프로젝트를 회사에 처음 제안했다. 2020년 CES에서 김 CEO는 기체개발팀장 자격으로 당시 정의선 수석부회장 옆에 섰다. 뒤편엔 그가 주도해 만든 콘셉트 기체 ‘S-A1’이 있었다.

김 CEO는 2014년 소설 ‘이상보다 높은 향기’를 내기도 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공학도다. 주인공은 우주에서 생을 다한다. 그의 낭만과 닮았다.

지난해 김 CEO는 동료 둘과 함께 플라나를 차렸다. 한국에선 유일한 eVTOL 개발 스타트업이다.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은 안민영 CSO는 김 창업자의 학부 후배다. 도쿄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LG전자에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를,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경영컨설팅업체 아서 디 리틀(Arthur D. Little)에서 전략 컨설턴트를 지냈다.

최고제품책임자(CPO)가 된 이진모 CPO는 현대차 재직 시절 동료였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이 CPO는 제품이 전달하는 감성 기술에 관심이 많다. 2020년 현대차에서 제네시스 GV80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RANC)’이 그가 참여한 작품이다.

현실적인 인프라에 맞는 기체 개발

세 창업자는 2028년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잡고 있다. 콘셉트에 따르면, 조종사 1명과 승객 6명을 태우고 최대 시속 350㎞의 속력으로 한 번에 500㎞의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 속력이나 항속거리 등 스펙만 보면 업계 최고 수준이다. 또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은 미국과 독일, 중국 등과 함께 eVTOL을 자체 개발, 생산할 수 있는 9개국 중 하나가 된다. 미국의 항공산업 전문 컨설팅업체 SMG컨설팅에서 매달 발표하는 기업별 현실성 지수(ARI)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가시밭길이다. eVTOL 개발사 대부분이 스타트업 출신이긴 하지만, 후발주자에게 열린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미국의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 독일의 릴리움(Lilium) 등 선두주자에게 투자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시장 규모의 한계 탓에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이 덩치를 키우기엔 환경이 여의치 않다. 삼성, 현대차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투자 받으면 하청업체로 종속되기 쉽고, 대기업 투자를 받지 않으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설비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난 7월 집계한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23곳이지만, 이중 제조업이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에서 의기투합한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8월 17일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만난 이들 창업자는 “현재 대다수 제조사에서 타깃으로 삼고 있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즉 도시 내 항공교통은 단시일 내에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도심 버티포트(수직이착륙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와 도심에서 사고가 났을 때 피해규모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지역항공모빌리티(RAM) 시장이 먼저 열릴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 나와있는 eVTOL 모델 성능으론 이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인프라와 함께 성장하는 기체를 개발하는 게 플라나의 전략이란 이야기다.

이날 안민영 CSO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화상으로 자리에 함께 했다.

RAM을 겨냥한 개발 전략은 릴리움에서 지난 2020년 처음 들고 나왔다. 당시 릴리움 측은 자사 웹사이트에서 “20㎞ 미만 거리는 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로를 다니는 차량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착륙장 설치에 드는 비용이 많고, 사용자도 체크인에 걸리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차량으로 갈 때보다 크게 빠르지도 않다. 릴리움 측은 “대신 750㎞ 미만의 고속 연결이 수백조원의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고 도시와 외곽지역을 연결한다. 같은 범위에서 지상 교통을 도입하자면 수백억 달러가 드는 반면, RAM 인프라를 도입하는 데는 2억5000만~3억5000만 달러 정도가 들 것으로 봤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차량으로 이동하기엔 멀고, 제트기를 타고 이동하기엔 공항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멀다. RAM이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플라나에서 최근 ‘저가항공보다 운임이 1.5배 비쌀 것’이라는 조건에서 1920명에게 eVTOL을 탈 의향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약 65%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이 CPO는 “750㎞ 이상 거리에선 공항을 거점으로 한 기존 항공기의 효율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출처=플라나]
​[출처=플라나]

“배터리 기체, 에너지 100% 활용 못 해”

문제는 도시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원이다. 대다수 제조사에서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쓰지만, 배터리만으로는 도시 간 이동을 감당할 만한 용량이 안 나온다는 것이 김 CEO의 생각이다. 김 CEO는 “배터리라는 제품은 지닌 에너지를 100% 활용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배터리를 안전하게 쓰려면 충전 잔량을 30~70% 사이에서 유지해야 한다. 잔량이 90%를 넘으면 배터리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진다. 배터리는 기온 영향도 많이 받는다. 날씨가 추울 때 휴대전화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듯, 순수 배터리 기반 eVTOL도 알래스카 등 추운 지역에선 운항거리가 짧아진다. 같은 UAM이라도 지역별, 계절별로 운항 효율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릴리움에서 개발 중인 기체 ‘릴리움 제트(Lilium Jet)’를 두고 배터리 성능 등의 문제로 스펙상 항속거리인 155마일(약 249㎞) 만큼 날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행동주의 투자사 아이스버그리서치는 지난 3월 낸 보고서에서 “타 회사 대비 최고 수준이라는 배터리 성능은 2013년 GM과 투자자에게 배터리 기술을 허위로 설명해 기소된 이력이 있는 자가 CEO로 있는 업체의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며 “성능도 실험실에서 측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날씨, 장애물 고도 요구사항 등을 고려하면 항속거리는 최대 66%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릴리움 측은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한번 폭락한 주가는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플라나는 이 지점에서 RAM을 구현할 동력원으로 하이브리드를 내세운다. 기체에 배터리와 함께 자체 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연료 기반 터빈 발전기를 함께 탑재한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동력원을 쓰면 최적의 배터리 용량을 유지하면서, 배터리만 쓸 때보다 멀리 날 수 있다. 김 CEO는 “새로운 전기 추진 체계에 대한 이해도는 기존 항공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플라나는 기술적인 면에서 (eVTOL의) 본질에 가장 다가서 있다”고 말했다.

또 이 CPO는 “최근 들어 하이브리드 기반 중장거리 기체가 2세대 eVTOL 모델로 주목받는 중”이라며 “2세대 기체 제조사에서는 플라나가 콘셉트 설계와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선두그룹에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CPO는 한화와 혼다, 프랑스의 어센던스 플라이트 등을 경쟁사로 꼽았다.

남는 과제는 이런 전략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인력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에선 필요한 만큼 구하기 어렵다. 특히 시급한 건 사람을 모으는 데 필요한 돈이다. 독일의 항공사 루프트한자 부설 연구소는 지난해 낸 보고서 ‘에어택시는 황금기를 맞이할 준비가 됐나(Are Air Taxis Ready For Prime Time)?’에서 스타트업이 eVTOL을 상용화하는 데 적어도 7억~10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적으로 풀어야할 과제가 많고, 항공 산업인 만큼 당국에서 요구하는 안전조치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한 돈을 충당할 국내 벤처투자사는 많지 않다.

플라나의 2세대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상상도. [출처=플라나]
플라나의 2세대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상상도. [출처=플라나]

 

이상보다 높은 향기

안 CSO는 “기체 개발 마일스톤(중간성과)과 투자 마일스톤을 연동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내년 3m 스케일의 기체를 띄운 뒤 시리즈A 라운드를 진행하고 ▶이후 연말까지 하프 스케일(8m) 및 풀 스케일 시제기 개발을 끝낸 뒤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다. 또 ▶2026년에는 미국 시장에 상장해 상용화를 위한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대략의 일정이다. 실제로 조비 에비에이션과 이브 홀딩, 릴리움, 아처, 이항, 그리고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 등 6개 개발사가 상용화 전 단계에서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에 상장해 자본을 충당했다.

안 CSO는 “당장 오는 9월까지 100억원 이상 규모의 프리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끝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력도 아직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김 CEO는 “현재 임직원은 37명”이라며 “에어버스와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항공우주산업(KAI) 등 항공업계 출신은 물론, 전기차 개발에 참여했던 자동차업계 출신 인력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50명(총원), 내년까지는 100명의 글로벌 인재를 충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창업 초기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이 분야 경력자들에게 일일이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는 이 CPO는 “하이브리드 기반 기체를 개발한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린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다르다”며 “이런 부분에서 색다른 기업 문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세 창업자의 목표 의식은 회사 이름에도 녹아 있다. ‘최선의 솔루션(PLAN A)’을 만들어낸다는 뜻을 담았다. 김 CEO가 대학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온 이름이기도 하다. 700여개 기업이 뛰어든 eVTOL 레이스에서 플라나는 승자가 될 수 있을까? 한반도 하늘을 처음으로 날았던 복엽기부터 첫 국산 초음속 항공기까지 전시된 이곳 박물관에서, 미래엔 플라나의 항공기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선두 가려지는 글로벌 eVTOL 레이스

미국의 eVTOL 개발기업 아처 에비에이션(Archer Aviation)이 선보인 기체 상상도. 아처는 2024년 첫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AP/뉴시스]
미국의 eVTOL 개발기업 아처 에비에이션(Archer Aviation)이 선보인 기체 상상도. 아처는 2024년 첫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AP/뉴시스]

2017년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에어택시 프로젝트 ‘우버 엘리베이트’를 선보인 이래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개발업계는 스타트업 판이었다. SMG컨설팅에서 발표하는 ARI 상위 25개 업체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는 6곳에 그친다(2022년 7월 기준). 차두원 모빌리티연구소장은 최근 저서 ‘넥스트 모빌리티’에서 “스타트업의 빠른 개발속도와 의사결정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생기업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2017년 전체 투자 유치 건(13건)의 62%였던 초기(시드) 투자 비중이 2020년엔 17%로 떨어졌다. 후기 투자도 소수 기업에 몰리고 있다. 지난 7월까지 투자금 총액이 7억 달러를 넘어선 기업은 조비 에비에이션(18억4460만 달러), 릴리움(9억3800만 달러), 아처(8억5630만 달러) 등 다섯 곳에 그친다.

한국에선 대기업인 현대차와 한화가 레이스에 참여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 eVTOL 개발을 위한 법인 슈퍼널(Supernal)을 세우고 2028년까지 상용화 기체를 선보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는 상용화 시점이 2026년으로 더 빠르다. 미국 스타트업 오버에어(Overair)에 지분투자를 하고, 기체를 공동개발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화는 약 1억7000만 달러를 오버에어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 소장은 저서에서 “eVTOL은 복잡한 하드웨어와 자율주행 같은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최고의 안전 표준과 인증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라며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기업이 있는 만큼) 신생기업의 도전이 쉽지 않은 영역으로 전환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비는 2024년, 릴리움과 아처는 2025년을 상용화 시점으로 잡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도 배터리만을 활용한 기체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항속거리가 짧고 환경에 취약한 배터리를 보완할 수 있다면 신규 사업자가 나올 여지도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7월 6일 ‘에어택시 스타트업에 배터리가 생사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투자자들이 배터리가 eVTOL 프로젝트의 핵심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 포춘코리아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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