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우의 제약기업 리포트]
한때 전세계에서 회자된 ‘K-방역’
한국 제약산업 존재감은 글쎄....

2020년 기준 미국 식약처 (US FDA - The United State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 등록된 한국의 전문의약품 원료와 완제품, 그리고 화장품 제조사 수는 약 350 개다. 화장품 관련 제조사를 빼면 실제 의약품만을 제조하는 업체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전문 의약품 원료 제조사만을 보면 약 30개 업체 정도. 전문 의약품보다 등록 절차와 기간, 그리고 비용이 비교적 적고 간소한 의료기기 제품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 식약처에서 긴급 승인 (EUA - Emergency Use Authorization) 제도를 이용해 ‘K-방역’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K-Wave’로 불리는 전 세계적 한류 붐은 미국에서도 많은 한국 기업들에게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쓰게 했다. 그러나 합성 기반 전통 제약기업들의 성공적인 미국 진출 소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신약개발과 의약품 제조에서 그 규모와 업력이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현지화된 사업 인프라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우리보다 먼저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규모, 유수의 글로벌 기업을 키워낸 국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100년 역사의 한국 제약산업이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과 유럽의 서구 선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년간 한국-미국 간 의약품 수출 교두보 역할을 업으로 해온 필자의 개인적인 업무 성적표가 될 수 도 있겠지만, 그간의 수고와 노력, 실패와 성공에 대한 경험을 통해 우리 제약업계가 대면한 현실적 상황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우리 기업이 갖추어야 할 요건과 태도 그리고 놓치고 있었던 기회들, 특히 다가올 미래가 우리에게 줄 긍정적 변수들을 살펴보자.

우리 제약산업의 역사부터 보자. 우리나라에 현대적 법인 제약회사가 등장한 시기는 경술국치, 즉 1910년 이후이다. 1920년대에는 유한양행이 최초로 서구식 제약 제조시설을 갖추고, 1940년대에는 종근당이 설립된다. 광복과 6.25 전쟁을 지나 60년대에 들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비로소 현대식 의약품 제조업 붐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는 최초의 해외 제약사 합작기업이 출현한 시기이기도 하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던 의약품 시장에 종근당이 항생제 원료를 자력으로 생산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며 국제적 생산 품질의 기준인 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s) 개념의 도입과 함께 신약개발을 위한 제약기업 내 연구소 설립이 이어졌다. 국내 의약품의 해외 진출이라는 과제와 목표가 우리 제약기업들에게 주어진 것.

2003년 국내 최초로 LG화학의 항균제 ‘팩티브’가 미국 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게 되고, 2019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의약품 생산업체 수는 612 개, 생산총액 22조 3000억원 (식품의약품 안전처 - 2020년 식품의약품 통계연보) 규모로 성장했다.

발전의 이면에는 우리 제약산업이 선진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에 장애가 되는 몇 가지 환경들이 존재한다. 제약산업 부흥의 초기인 1950년부터 1960년 사이 한국에서는 정부가 항생제 국산화를 독려해 많은 제약사들이 항생제 제조에 집중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질환 치료제 생산을 준비할 수 있는 제조시설은 마련하지 못했다.

소수의 제품군, 과도한 국내 경쟁으로 더 큰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부족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미국 제약사가 한국에서 의약품 원료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제약기업들의 수출국가는 동남아시아, 남미와 유럽, 그리고 오세아니아와 중동국가들까지 전 세계로 뻗어져 있다. 특히 2014년 한국 식품의약품 안전처의 PIC/S (The Pharmaceutical Inspection Co-operation Scheme)라는 의약품 상호 실사 협력기구 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GMP 수준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면서 글로벌 시장 확대를 본격적으로 도모할 수 있게 됐다. PIC/S 에 가입하게 되면 50여 가입 국가들과 의약품 품질관리와 실사 기준을 공유하고 이를 상호 인정하므로 수출의 길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PIC/S 가입국가중 하나인 미국으로의 수출 활로가 확장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식약처인 FDA를 통해 국내 제조사가 실사를 통과하고 제품이 승인되는 사례는 여전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국내 제약기업들은 고객사인 미국 기업의 신약 또는 복제약의 원료 제조처로, 완제품의 경우는 CMO/CD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 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라는 위탁생산/개발 업체로서 우회적 진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약품 개발부터 등록 신청, FDA 허가까지의 전 과정을 오롯이 진행한 경우는 아직까지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시장 진입을 위한 현지 파트너 평가 및 선정 작업, 수십만 달러 이상이 드는 FDA 등록 비용과 그에 따른 관리 비용도 기업들엔 부담이다. 정부지원 같은 마중물과 진입 이후의 성공적인 현지화와 상업화 전략이 우리 K-Pharma에겐 절실하다.

‘가격’도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데 장벽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의약품 시장인 동시에 의약품 공급가가 가장 낮은 시장이다. 중국과 인도에서 생산된 저가의 원료와 완제품들이 이미 미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잠식했고,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약품들은 이 두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제약기업의 의약품 원료 및 완제품의 공급 가격은 일반적으로 유럽 선진시장의 제품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지만, 중국이나 인도와 비교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 이미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주원료, 부원료, 포장재들의 높아진 수입가와 지금도 오르고 있는 물류비용으로 현재의 제조 단가를 낮출 요인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

다만, 생산과 관리인력의 인건비를 변수로 삼을 수 있다면 경쟁력 확보에 도전해 볼 만하다. 국내 제약사들도 인건비 절감과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제조 기지를 해외에 구축하는 작업들을 해 오고 있다.

필자는 인건비 절감의 숙제를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에서 풀어낼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그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7년 시작한 민간 경제협력사업으로 녹십자와 북한의 광명성 총회사가 합작해 2000년 평양에 최초로 의약품 공장을 준공한 사례가 있다.

단순히 인건비 경쟁력으로 북한을 볼 필요는 없다. 북한 2500만 인구가 가진 다양한 질환과 이에 대한 적응증의 연구 개발, 같은 언어권의 현지 생산 및 관리의 용이성이 우리 제약기업이 쌓아온 업력과 제조, 관리의 역량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자체를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삼을 수도 있다. 북한은 의약품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또 열악한 감염병 대응력, 공신력 있는 의약품 생산과 품질관리 기준이 부재한 상황들을 여러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인도적 차원으로 하는 일회성 또는 단기간 지원이 아닌 다가올 통일을 염두한 선행적 준비작업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분단 77년의 시간은 대한민국과 북한을 모든 면에서 갈라놓았다. 그중에서도 보건, 의료 분야에서의 양적, 질적 차이는 그 폭과 깊이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크다. 북한은 해방 후 전 국민 ‘무상치료제’라는 기치로 정책을 입안해 추진해 왔다. 한때 의사 수가 인구 1000명 당 3.3명 (아시아 평균 1.3명, 남한 2.0명 – 2012년 OECD/WHO 자료)에 이르는 실효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북한 최악의 식량난, 의료난으로 인해 북한의 보건, 의료 체계는 붕괴했다. 현재 진행 중인 최악의 코로나19 창궐과 백신 접종률 0%라는 북한 방역 및 의료 체계의 붕괴 상황은 과거 ‘고난의 행군’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듯 하다.

우리 제약기업들이 해외 선진 시장 개척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에도 북한의 상황을 우려와 책임의 자세로 보아야 한다. 호주 (Australia)의 인구에 육박하는 2500만 인구의 북한은 우리 제약사에게 사명으로서 동시에 기회의 땅으로 다가 올 것이다. 사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방법이 있음을 믿자. 우리가 가진 특수성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강한 경쟁력이 되고, 인간답고 존귀한 삶을 함께 살아갈 참된 가치도 결국 우리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최근 큰 화제가 되었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그리고 애플 TV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한 파친코 (Pachinko)의 초반부에는 주인공 선자의 아버지가 유언처럼 딸에게 남기는 대사가 있다. “행복은 타고난 팔자와 상관있는 게 아니고 자격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필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자격은 내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 어떤 일을 목표하고 계획하고 이루려 할 때 이 모든 과정이 만약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것은 바로 사명이 아닐까? 선자의 아버지처럼 좋은 아비가 되려는 사명이 자격으로 주어졌다면 생명을 걸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은 받은 자의 ‘책임’이다.

우리 기업으로 돌아가 보자.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제약 기업의 사명은 무엇일까 먼저 자문해야한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일제 강점기 중에 회사를 설립하고 합심해 힘을 모았던 제약기업들은 하나같이 민족기업이었다. 이때의 창업이념과 그 DNA를 K-Pharma의 정체된 해외 사업개발과 신시장개척의 원동력으로 삼기를 제안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고 각 부처들은 새로운 목표와 과제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우리 제약기업에도 기회다. 우리만이 가진 환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K-Pharma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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